[전남일보] 삶에 지친 예술가들의 열정에 불을 지피다_바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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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광주바로병원 작성일19-12-19 16:31 조회16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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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문화원, '쿠팡맨'권웅·'시각장애인'강상수 초청 송년음악회
11일 광주 북구 로제토서 치유·위로 메시지 전해
세평 남짓 작은 연습실에 들어서자 재즈곡으로 유명한 ‘낙엽지는 가을(Autumn Leaves)’이 연주되고 있었다. 키보드를 잡은 재즈피아니스트 강상수씨가 전체적인 곡을 이끌어가고, 바이올리니스트 정유진씨가 화음을 맞췄다. 중간중간 콘트라베이시스트 권웅씨가 곡에 양념을 넣듯 중후한 선율로 재즈를 완성시켰다. 11일 오후 6시 30분 광주 북구 빛고을대로에 위치한 로제토에서 ‘힐링’을 주제로 열리는 바로문화원 송년음악회를 위한 연습자리였지만, 악보 보면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공연을 주최한 정유진(39·여) 바로문화원 대표이자 바이올리니스트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며 “악보없이 모든연주가 다 가능한 분들이다. 실력보단 열정의 결과고, 이러한 열정이 이번 공연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공연을 의뢰했을때 “출연료가 얼마인가요”가 아닌 “연주할 곡이 어떤 곡인가요?”라고 묻고, 하루만에 곡의 운지법을 완벽하게 익히고 첫 연습에 참여하는 그들이 남들과 다른 열정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권웅(38) 콘트라베이시스트는 “누구나 그렇듯 세계 최고가 되고 싶었고, 큰 무대에 서 보는 것이 로망이었지만 세상 속에 던져진 나는 ‘하급인력’에 불과하더라”면서 “생계전선에 뛰어들면서 자존감이 낮아졌지만, 음악을 할 때 만큼은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연주단체에 들어가면서 광주와 첫 인연을 맺었던 권씨의 또 다른직업은 ‘쿠팡맨’이다. ‘최고’라는 목표를 향해 연습에 몰입했지만, 가정을 이룬 후부터는 ‘가족’이라는 묵직함이 그를 생활전선으로 뛰어들게 했다. 콘트라베이스, 색소폰 등 레슨을 하고 학원을 운영하면서 어느정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자신을 위한 연습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쿠팡맨’이었다. 오전 4시부터 시작되는 택배분류 작업이라 몸은 고단했지만 오전 9시면 모든 업무가 끝나기 때문에 이후 시간은 연습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씨는 “생계를 꾸리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과 설렘, 즐거움이 사그라져 있던 상태였는데 요즘엔 행복하다”면서 “아이들에게 아빠가 썩 괜찮은 연주자임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키보드를 맡은 강상수(30)씨는 잘 알려진 재즈피아니스트다. 나주 출신으로 1급 시각장애인인 강씨는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강씨는 “미국 유학시절에 광화문광장의 촛불문화제 소식을 접했는데, 촛불을 켜고 부르는 민중가요가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며 “문득 내가 나고 자랐던 곳에 있는 음악인으로서 영감을 주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어렵게 버클리 음대에 들어간 이들의 꿈의 무대는 대개 뉴욕이지만 강씨는 달랐다. 재즈에 담긴 설움과 한은 민중가요와도 다르지 않았다. 강씨가 뉴욕 대신 광주를 선택한 이유다.
강씨는 “내가 배운 음악이 목적에 맞는 곳에 쓰여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이번 음악회 주제가 ‘힐링’ 또는 ‘치유’인만큼 음악가로서, 장애 당사자로서 관객에게 위로와 울림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공연을 여는 정유진 바이올리니스트는 음악치료사이자 세 아이의 엄마다. 유독 ‘평화’ ‘통일’을 비롯해 ‘치유’에 관심이 많았던 정씨는 버클리 음대 유학시절에도 이를 주제로 꾸준히 곡을 만들어왔다. 광주에 정착하고 세 아이를 두었지만, 작업에 대한 열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정씨는 “광주시민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며 “문화원을 통해 통일과 광주를 주제로 미술, 음악, 문학관련 행사도 진행해 보고 싶다”고 설명했다.
바로문화원의 시작을 알리는 송년음악회에서는 보컬리스트 한별씨가 합류하며, 영화 ‘여인의 향기’ 삽입곡 ‘포르 우나 카베차(Por una cabez)’ ‘유모레스크’ ‘행복을 주는사람’ ‘돈 노우 화이(Don’t know why)’를 비롯해 강상수의 ‘그린필드(Greenfield)’ 정유진의 ‘아카시아 향기’ 등 두 음악가가 직접 작곡한 곡을 감상할 수 있다.
원문링크 : https://jnilbo.com/2019/12/09/2019120917405771073/